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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3. 15:46 - 모든이교회

걷다. 빠지다. (마 14:28~33)

강해설교 아웃라인 No. 393 ©mst

 

40. 걷다. 빠지다. (마태복음 14:28~33) 

 

모든이교회 주일설교(2021. 10. 03)

 

프롤로그. 

1. 살아보니, 삶은 한가한 소풍이기보다 순경과 역경을 담은 여행 비슷하다. 특히, 성도의 삶은 천로역정이다. 

2. 멸망의 에서 출발해 낙담의 , 사망의 골짜기, 허영의 거리 지나 마침내 천성 도달하는 과정이다. 

3. 어떤 이는 당당히 걷지만 어떤 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당당히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한 본문의 교훈을 살펴보자. 

 

첫째, 믿음의 당당한 걸음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신뢰를 신뢰하라(28~29). 

1. 28~29 보자. 본문은 당당한 믿음의 걸음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를 신뢰하라고 가르쳐 준다. 

    a. 배경은, 제자들이 아홉 시간 넘게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주님이 위로 걸어오시는 사건의 연장이다. 

    b. 베드로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요청은 그가 주님으로 신뢰(확신)함이다(헬라어 가정법 주님이시니). 

    c. 그래서 주님은 무모하게 보이지만 즉시 오라 허락하시니 베드로는 주저없이 위로 걸어서 주님께 간다. 

    d. 베드로가 당당히 위를 걸음은 주님을 향한 자신의 신뢰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뢰가 옳다는 확신이다. 

2. 우리의 신뢰(확신) 감정(느낌, 환경) 근거한 것이면 위험하지만 주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면 신뢰(확신)해도 좋다. 

    a. 오늘날 많은 사람(X人도) 신념(긍정의 , 적극적사고방식) 근거해서 걷지만 신념은 바뀌니 살얼음판이다. 

    b. 오늘날 많은 사람(X人도) 감정(기분) 근거해서 걷지만 감정은 위험천만하다(감정에 충실해!). 

    c. 그런데 우리의 믿음(신뢰와 확신의 근거) 말씀에 있다면 당당히 걷고 뛰어도 된다. 반석이니(구원, 천국 ). 

    d. 예화 : 유석경 전도사(아가 6:10) 

절벽 끝에 내가 있고 절벽 밑에는 예수님이 계신다고 생각해보라. 예수님이 손을 벌리시며 이렇게 외치신다. , 내가 받아줄게. 뛰어내려! 그러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할까? , 주님! 저는 주님을 신뢰해요. 뛰어내릴게요! 이렇게 말하고는 기어서 내려간다. 뛰어내리자니 절벽이 너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어서 내려가는 동안 피도 나고 상처도 입는다. 우리가 손을 놓고 뛰어내리면, 주님 품에 안기는 경험을 뿐만 아니라 다치지도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손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98퍼센트는 놓았지만, 2퍼센트는 놓지 못했다. 스스로 뭔가 해보려고 잡고 있었다. 나는 손을 놓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신학교에 때도 절벽에서 손을 놓고 100퍼센트 주님을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인생을 모두 주께 맡기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신학교에 가서도 1퍼센트를 놓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에게 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순간 절벽에서 손을 놓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손을 놓았네? 놓으려고 10년을 기도해도 일이었는데, 곧바로 이루어졌다절벽에서 손을 놓으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절벽에서 비상을 경험했다. 신뢰 뜻하는 Trust 어원은 편안함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왔다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알고, 모든 것을 맡기니 편안해지는 상태. 주를 향한 신뢰(확신) 신뢰(확신)하자. 

3. 하나님을 향한 신뢰(믿음, 확신) 신뢰(믿음, 확신)하면 항상 좋은 (사람 차원이 아닌 하나님 차원) 경험하게 된다. 

    a.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매사가 긍정적으로 바뀐다. 그러면 모든 일이 잘되고 감사하게 된다. 

    b. 어떤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는데 삶과 행동에 반영이 없다. 자신의 신뢰를 신뢰할 행동한다. 

    c. 디모데후서 3:14.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것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를 신뢰함이며 모든 것이 복이다. 

    d. 예화 :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감사 편지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을 충효일심보다 귀하고 아버지를 믿고 따를 우리의 신념은 일편단심입니다. 세상에 어디에도 이런 아버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말해보아도 세상에 오직 아버지 분이랍니다. 여태 우린 세상에 부럼없이 산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번에 오디오 성경을 들으면서 며칠 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듣고 듣고 하면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되고 세상을 만들 줄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렇게 얘기를 하여 주셨습니다. 낯선 나라에 와서 놀라운 영광을 지내게 되였습니다.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 조국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찾아 주시고 막힌 우리들의 눈과 머리를 오디오 성경으로 열어주신 고마운 은인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와 이번에 주신 오디오 성경에 소중한 선물들을 아끼고 아끼면서 우리들은 말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주께 신뢰를 신뢰함이다. 

 

둘째, 믿음의 당당한 걸음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의심을 의심하라(30~33). 

1. 30~33 보자. 본문은 당당한 믿음의 걸음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심을 의심하라고 가르쳐 준다. 

    a.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 순간은 주님보다 바람(성난 파도) 크게 보는 의심 일어난 순간이다. 

    b.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의심(주님보다 바람을 크게 보는) 의심한 순간 주님께 소리 질러구원 요청한다. 

    c. 그래서 믿음이 작은 자여 …(믿음이 있지만 적게 믿는 자여) 함은 믿음의 관이 의심 막힌 것이다. 

    d. 베드로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림은 주님을 향한 자신의 의심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심이 틀림을. 

    e. 당당히 걷기 위해 모든 환경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 보며 모든 의심(양쪽을 붙잡다) 의심해야 했다. 

2. () 빠져 허우적거리며 거라면 당신의 의심을 굳게 신뢰하라. 그러면 확실히 가장 비참한 삶이 것이다. 

    a. 의처증과 의부증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가! 하나님을 향한 의신증(하나님의 존재나 사랑) 그렇다. 

    b. 우리가 맨날 어린아이가 요구하듯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의 표현을 요구한다면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하겠는가! 

    c. 하나님(창조론)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하고 진화론을 과학적이라고 신봉한 세상 비참함의 끝은 상상초월이다.  

    d. 사람들은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지만 지나고 보면 괜한 의심인 경우가 많다(신학교 자취, 통장). 

    e. 임신부 OO에서 음식에 바퀴벌레(사실, 추측과 의심) 나왔다며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가 혼쭐났다. 

3. 어떤 순간에도 주님을 향한 의심이 찾아오면 의심을 의심하자. 그러면 다시 당당히 믿음의 걸음을 걸을 있다. 

    a. 기억하자. 예수님을 향한 의심은 지옥( ) 경험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신뢰는 천국( ) 경험한다. 

    b. 아무리 세상의 바람과 파도가 높고 강해도 주님보다 높고 강하지 않다. 나에겐 하나님의 아들 계시지 않은가! 

    c. 잠시 흔들려도 의심을 의심하고 주님께 주여, 구원하소서! 하자. 주님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주신다. 

    d. 출애굽기 14:12~14. 주님을 향한 모든 의심을 의심하라. 주님이 바다에 길을 내지 않으면 위를 걷게 하신다. 

    e. 예화 : 경주마와 차안대 

경주마들은 눈에 가리개(차안대) 한다좁은 트랙을 빠르게 달리는데 눈을 가리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옆을 달리는 말들의 상황을 말이 직접 파악해서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빨리 인지해서 대처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같다. 기수가 아무리 훈련이 되었다고 한들 기수가 파악해서 말의 몸을 움직이는 데는 아무래도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수와 말이 몸처럼 팀웍이 좋다고 해도 자기 몸처럼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말에게 앞만 보도록 옆을 가리는 눈가리개는 필요하다. 말은 예민(소심) 동물이며 게다가 넓게 보는 시야가 트여 있다(357).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정보에도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경주를 하거나 짐을 끄는 말의 경우, 그래서 눈을 가려주지 않으면 주변의 변하는 상황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한다쉽게 흥분하고 그런 상황에서 경주를 하거나 마차를 끌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그래서 기수나 마부의 지시에 따르도록 눈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린 우리가 보고 판단하기를 원한다그것이 훨씬 우리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너무 주위에 집착하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주님) 보자. 예수님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니. 비진리(이단) 주는 가리개는 과감히 벗어야겠지만 

 

에필로그. 

1. 33.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보유국, 한국은 BTS 보유국,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보유자. 

2. 어떤 이는 당당히 걷지만 어떤 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당당히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 어떻게 할까? 

    a. 믿음의 당당한 걸음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신뢰를 신뢰하라. 

    b. 믿음의 당당한 걸음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의심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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