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아웃라인 No. 254 ©mst
08주. ❝어리석은 사람❞ (야고보서 4:13~17)
모든이교회 주일설교(2019. 02. 24)
프롤로그.
0. 오늘 말씀의 제목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1.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어디에 더 가까운 사람인가?
a. ❛계획적인(이성적인) 사람❜인가, ❛즉흥적인(감정적인) 사람❜인가? 이것은 기질(성격)의 문제다.
b. ❛합리적인(실속 있는)❜인가, ❛불합리적인(실속 없는) 사람❜인가? 이것은 인간관계(사회생활)의 문제다.
c. ❛어리석은(바보스런) 사람❜인가, ❛지혜로운(슬기로운) 사람❜인가? 이것은 인생과 영원에 관한 문제다.
2. 기질이나 성격 혹은 사는 방식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인생과 영원에 관한 문제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a. 성경에서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는 성격, 스타일, 선택(옵션),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b.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은 생명과 죽음, 영생과 영벌,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3.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지 살펴보고 ❛지혜롭고 합리적이고 실속있고 복된 사람❜이 되자.
첫째, 잔머리로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다(13~15절).
1. 13~14절을 보자. ❝들으라 너희 중에...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안개니라❞
a. 표면적으로 이 말은 마치 사업 감각이 좋은 것처럼 들리지만 주를 무시하는 세속적인 세계관을 숨기고 있다.
b. 이 사람들은 아마도 부유한 상인 계층에 속하는 그리스도인들일 것이다. 반면에 5:1~6의 부자는 불신자들.
c. 야고보는 지혜로운 사업 계획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제한 계획을 반대하는 것이다.
d. 이들은 하나님의 성품, 원리원칙, 방식이 아닌 세상적인 잔머리를 굴려서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e. 여러분은 어떤가? 하나님의 성품, 원리원칙, 방식보다 세상 잔머리를 굴려서 산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f.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과 삶은 한 줌의 안개(연기) 또는 찬 공기 속에 한순간 나타나는 입김과 같기 때문이다.
g. 예화 : 스턴트맨의 최후
인간은 약하다. 강하다는 사람도 다 약하다. 어떤 스턴트맨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세 번이나 떨어져 내리고 살아서 매스컴이 ❛죽음을 정복한 사나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가 뉴욕 시내를 걷다가 꼬마가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세상에 아무도 자기 인생을 자신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막히는 길을 만난다. 내가 잘해도 남이 막는다. 정말로 육적인 생명은 부질없다. 주님없이 잔머리로 사는 것이 그렇다.
2. 15절을 보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a. ❝주의 뜻이면❞은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경건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던 관용구였다(행 18:21).
b. ❝주❞는 우주를 붙드시고 그 뜻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하시는 창조주로서의 ❛여호와❜를 가리킨다.
①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든지 사탄을 주인으로 모신다(요 8:44). 중간 지대는 결코 없다.
②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계획을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에 놓는다. 그들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c. 모든 크고 작은 결정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잔머리로 하면 손해만 남는다.
d. 여러분은 어떤가? 우리의 잔머리(생각)를 하나님의 뜻에 포개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롭고 복된 사람이다.
3. 창세기 47:9. 질문 ❝성경에 잔머리로 인생을 살았다가 험한 꼴을 본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인가?❞
a. 야곱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잔머리로 살아서 130년의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b. 말년에 정신차리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삶을 살았다(얍복강). 그것이 가장 지혜와 축복의 시간이었다.
c. 여러분은 어떤가? ❝험악한 세월❞을 살지 않으려면 잔머리 굴리지 말고 주의 뜻대로 살자.
4. 예화 : 김OO 목사님. 주님의 것을 아끼려고 하다가 손해만 보았다. 성경에 ❛요나❜도 그랬다(시간, 사명).
5. 시편 14:1.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배제하며 산다. 실천적인 무신론자다. 그것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6. 예화 : 합리적인 믿음
미국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신학자 존 레녹스, 다니엘 크레이그의 토론을 본 미국 전역의 수많은 청중들은 믿음과 신앙이 무신론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과 성경의 말씀을 믿는 것은 망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도피처가 아니라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가장 합리적이고 실리적이며 안전하다.
7. 예화 : 2차 대전 때의 안정과 승리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 국민들은 극도의 혼란과 깊은 절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몹시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들에겐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 윌리엄 템플 주교였습니다. 영국 여왕은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두 사람에게 연설을 부탁하였습니다. 국민들은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두 지도자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의 연설 마지막 부분이 같았습니다. 국민들에게 ❛예배❜를 호소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경건히 무릎꿇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영국 국민들은 다음날 일제히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그 날 전 국민의 70% 이상이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전쟁에 대처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결국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잔머리가 아닌 주님께 포커스를 맞춤이다.
8. 잠언 31:30~31. 잔머리가 아닌 주님. 현숙한 여인은 알았다. 잠언의 지혜자들도 이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둘째, 자랑질로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다(16절).
0. ❛자랑질❜(북한 기자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기 자랑이 몸에 밴 사람이기에. 그들의 정체는 ❛교만한 사람❜이다.
1. 16절을 보자.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a. ❝허탄한 자랑❞ :
① 일반적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거나 과대 평가하는 ❛오만(교만)❜이다.
② 복수형태, 세상 것에 대한 어리석은 자기 확신과 천박한 자만심이다. 그것은 마침내 ❛악❜으로 치닫는다.
b. 자기들의 사업(장사)이나 계획들이 성공하리라는 교만한 떠벌림이다. X人은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c. 자기가 잘해서,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성공했다는 자랑이다.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한다.
d.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하나님만 차지하실 수 있는 위치로 사람을 높인다.
e. 사도 야고보는 자랑질과 교만으로 사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다. ❛헛똑똑❜이다.
2. 예를 들어, 1,300명(5,000장)이 모인 경품 추첨 행사에서 청소기 당첨됐다. ❛자랑(교만)❜이 아닌 ❛은혜❜다.
3.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세상적인 자랑(교만)❜이다. ❛루시퍼❜가 그렇게 해서 ❛마귀❜가 됐다.
a. 세상적인 자랑은 금새 사라지고 만다. 그 자랑은 부끄러움과 수치로 바뀌고 만다. 짐으로 바뀌고 만다.
b. 세상적인 자기 확신과 교만은 추락으로 끝나고 만다. 가인, 바벨탑, 홍수, 바로, 느부갓네살, 벨사살...
c. 잠언 18:12.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이 뼈저리게 느낀 진리다. 반대로 겸손은 더 큰 은혜를 받는다.
d. 세상적인 자기 확신, 자랑, 교만, 오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자. ❝주님이 하셨습니다!❞
e.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는 자랑질과 교만의 온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4. 예화 : 일 잘하는데 성공 못하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습관은 과연 무엇일까.… 쓸데없는 비평, 파괴적인 말, 부정적 표현, 잘난 척하기, 격한 감정, 반대 의견, 정보 독점, 인색한 칭찬, 남의 공 가로채기...(중략), 사과하지 않기, 경청하지 않기, 고마워하지 않기….❞ 뇌과학자 정재승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가 공저한 책 ❛쿨하게 사과하라❜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일은 잘하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성공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알게 모르게 몸에 밴 교만한 모습이고, 또 하나는 무례한 말투입니다.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발밑 작은 돌부리 때문에 넘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은 작은 것에서 비롯됩니다. 천하 만물은 크고 중요한 것으로만 이뤄진 게 아닙니다. 세상을 두루 참답게 이루는 건, 신비로운 사소함들입니다. 자랑과 교만을 멈추자. 겸손히 주님만 높이고 인정함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4. 누가복음 12:19~21.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지 말자. 마음과 몸을 낮추자. 낮추면 주님이 높여주신다.
셋째, 태만으로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다(17절).
0. 태만은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고 게으름❜이다. 동의어는 게으름, 나태, 불충실. 반대어는 성실, 근면이다.
1. 17절을 보자.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a. 이 말씀은 일명 ❝태만죄❞라고 불리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
b.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행하는 일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행하지 않는 선도 하나님께는 똑같이 중요하다.
c. ❛죄니라❜ :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죄❜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죄❜로 이어진다.
d. 어떤 일이 선한 줄 알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줄 알면서 고의적으로 거역하면 죄가 된다.
e. 이런 태만(게으름, 나태, 불충실)으로 사는 자가 어리석다. 주의 일에 성실한 자가 지혜롭고 복된 자다.
2. 많은 사람들이 세상 일(돈)에 바쁘다. 부지런하다. 그러나 영적인 게으름은 경계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섭다.
a. 사도 야고보가 경계하는 것은 영적인 부분의 태만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태만이 더 무섭다는 말이다.
b. 잠언 24:30~34. 잠언의 기자는 현실 너머 영적인 영역을 보도록 도전한다. 지금 여러분의 영혼은 어떤가?
c. 예배는 영적인 일이다. 말씀과 기도는 영적인 일이다. 전도와 봉사(나눔)는 영적인 운동이며 노동이다.
d. 예화 : IMF를 겪은 영국과 핀란드 그리고 한국
영국과 핀란드가 IMF 경제위기를 겪을 때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책이었지만, 우리나라가 IMF 경제위기를 겪을 때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 ❛소주와 삼겹살❜이었다. 사람의 심성이 중요하다. 외적인 공격보다 내적인 나태가 더욱 인생과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여러분의 영혼은 어떤가? 태만을 버리고 하나님 일에 성실로 서자.
3. 누가복음 12:47. 태만(게으름, 나태, 불충성) 때문에 하나님께 매를 벌지 말고 성실과 근면으로 복을 벌자.
4. 예화 : 담배와 뱃살(게으름)
19세기 미국의 대부흥을 이끌었던 무디(Moody)는 영국에 집회를 하러 갔다가 깊이 존경하던 스펄전(Spurgeon)을 만나고 싶어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자 흠모하던 스펄전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입에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었습니다. 무디는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담배를 피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스펄전은 장난스러운 미소로 뚱뚱한 무디의 뱃살을 쿡 찌르며 이렇게 말했다죠. ❝그럼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배가 나와서 쓰겠나!❞ 당시 미국의 주요 보수 교단은 술과 담배를 죄악시한 반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교회는 술과 담배에 너그러웠고, 대신 미국에서 문제시 하지 않은 탐식과 게으름을 경계하며 죄악시했습니다.
5. 로마서 12:11.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를 섬기는 사람이 지혜롭고 합리적이고 실리적이고 복된 사람이다.
6. 이사야 1:18~20. 여기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과 죄 사함의 은혜를 더 이상 미루지 말자. 지금 받자.
에필로그.
1.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과 인생과 영원에 유익할까?
a. 이제 잔머리를 내려놓고 주의 뜻에 집중하자.
b. 이제 세상 자랑을 내려놓고 주님을 자랑하고 주의 은혜를 높이자.
c. 이제 태만(게으름, 나태, 불충성)을 내려놓고 주의 일에 열심 내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되자.
2. 찬양 : ❝내 평생 소원 이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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