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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21. 15:49 - 모든이교회

오늘의 부르심(벧전 1:6~12)

강해설교 아웃라인 No. 426 ©mst 

 

16. 오늘의 부르심 (베드로전서 1:6~12) 

 

모든이교회 주일설교(2024. 04. 21)

 

프롤로그. 

1. 그리스도인(크리스천, 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부르심(calling) 받은 자들이다( 1:7; 고전 1:2). 

2. 예수님이 땅에 사시다가 가신 2,000년이 지난 현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오늘의 부르심(calling)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신앙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8b~12). 

1. 8b~12 보자. 본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그분을 신앙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a. 이제도 보지 이라함은 보지 못해도 믿을 있고 믿음의 보상인 구원환희 누릴 있음이다(각성제). 

    b.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구원(복음) 얼마나 놀라운지 구약의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고상고 정도다. 

    c.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구원(복음) 얼마나 위대한지 구원의 경험이 없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정도다. 

    d. , 현대를 사는 오늘의 부르심 십자가 이편에서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믿고 구원의 혜택을 누리라는 것이다. 

2. 십자가 이편에서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그분을 믿고 구원이 주는 모든 혜택을 샅샅이 누리자. 

    a. 십자가 저편의 사람들은 오실 구주를 믿었고(말씀) 십자가 이편의 우리는 오신 구주를 믿어 구원의 혜택을 누린다. 

    b. 보여주어야 믿겠는가? 예수님을 본다고 특별하지는 않다. 오히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 20:29). 

    c. 예수님을 직접 봤던 베드로도 굳이 예수님을 봐도 믿고 구원의 혜택을 누리는데 전혀 지장 없다고 하지 않은가! 

    d. 보이나 보이나 구원(복음) 값싸게 취급 말자. 예수님의 희생과, 선지자들의 열망과 천사들의 관심이 있었으니! 

    e. 예화 : 마르코 폴로  

13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만 17 살았다. 그는 유럽에서 중국을 오가며 들렀던 나라들에서 경험한 것과 중국에서의 생활을 토대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썼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동방의 땅은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그들은 책의 내용을 믿지 못했다. 심지어 마르코 폴로가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에 그의 친구들은 마르코 폴로를 찾아와 말했다. 이제 살날이 머지않았으니 그만 진실을 밝혀주면 안되겠나? 자네가 책들이 모두 소설이라고 시원히 말해주게나, 우리로선 도저히 내용을 믿을 수가 없네. 천만에, 책은 모두 진실이라네. 사실 나는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의 반도 책에 담지 못했네. 머지않아 자네들, 어쩌면 자네의 후손들이라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예수님 당시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은 반면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보지 않고도 믿는다. 구약 선지자들이 그토록 살펴보던 구원(복음), 천사들이 그토록 알고싶었던 구원(복음), 기록된 말씀과 전해진 복음이면 충분하고 환희의 감동이다. 

민아가 4 때였어요. 아내가 임신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대천해수욕장 호텔에 묵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다른 방에 가서 문학 청년들과 신나게 떠들었지. 그때 민아가 자다 깨서 컴컴한 바다에 나가 울면서 아빠를 찾은 거야. 어린 애가 겁에 질려서...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우리 애는 기억도 난다지만(웃음). 그랬던 아이가 혼자 미국에 가서 무척 고생했어요. 3 만에 법대 나오고 외롭게 키울 , 그날 바닷가에서처럼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 그때 나의 대역을 누군가 해줬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야. 내가 해준 신이 해줬으니 내가 갚아야지. 이혼하고도 편지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좇고 있어요(이어령).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신앙(신뢰)하라는 부르심 안에 살아가자. 

 

둘째,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6~8a). 

1. 6~8a 보자. 본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그분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a. 예수를 보지 못했어도 사랑할 여러 가지 시험, 근심 압도할 기쁨(jump for joy) 생성된다(연인). 

    b. 맹목적인(잘못된) 사랑 가치 없고 위험하나 믿음의 확실함에서 나온 성도의 사랑 금보다 귀하다. 

    c. 잘못된 사랑 스토킹, 예수를 보지 못했어도 사랑하면 스타킹(Star, King) 된다(칭찬, 영광, 존귀). 

    d. , 현대를 사는 오늘의 부르심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사랑(사랑의 동기, 방식)하라는 축복의 부르심이다. 

2. 2,000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그분을 사랑하는 금보다 귀한 크리스천이 되자. 

    a. 예컨대, 임신한 아내를 두고 업무(미션) 떠난 남편과, 태어나 엄마로부터 아빠에 대해 들은 아이의 사랑이랄까. 

    b.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해 수많은 흔적을 남겨놓으셨다. 성경과 역사의 기록물 다양하다. 

    c. 때로, 보여지는 것들만 사랑하면 사랑의 진전이 없고 권태기가 오지만 예수 사랑의 부르심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d. 그때처럼 지금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사랑하라는 부르심은 감정이 아닌 삶의 방식이 되게 하자( 3:23~24). 

    e. 예화 : 사랑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주인공인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1614-1691) 있다. 파리 근교의 카르멘 수도원에서 수사로 일했던 그의 본명은 니콜라스 헐먼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냥 로렌스 형제라고 불렀다. 수도원에서 회계와 요리를 맡아 일했다(비록 요리는 그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한쪽 발을 절던 그는 식재료를 사기 위해 멀리까지 가야 했고 많은 요리를 빠른 시간에 잘해내야 하는 긴박한 상황들이 일상이다. 그러나 항상 있는 힘과 지혜를 구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란 프라이를 뒤집던 사람. 낙엽 하나를 주울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했던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기도하며 들었던 사람. 책의 부록으로 수도원 원장이 로렌스 형제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증언한 내용이 실려 있다. 보다 객관적인 증언이라고 있겠다. 우리는 그와 대화하면서 때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같은 착각이 든다. 그의 손을 만지면 예수님의 손을 만지는 같았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랑의 부르심이 삶의 방식이 되자. 사람이 싫으나 좋으나, 일이 싫으나 좋으나 예수님을 사랑하면 된다. 

소련 흉년이 거듭되자 당국은 1% 사람들을 특별히 선별해 나쁜 박토를 주고 자유롭게 농사지어 먹게 했다. 1% 농민들에게서 생산된 농업 생산량이 소련 농업 생산량의 27% 되었다. 사례를 통해 소련의 고위 당국자는 공산주의 노선을 수정하는 수정주의를 요청했다. 농사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의 성공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공산주의처럼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강요된 사랑은 열매가 없다. 비록,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따르면 어떤 어려움도 돌파할 있고 우리를 짓누르는 근심을 덮고도 남을 환희가 있다. 어떤 아내는 20년간 식모살이 했다 남편을 원망한다.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따르면 모든 일에 승리하고 성공한다.  

사랑인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센류라는 17 음으로 짧은 정형시 형식에 노인들의 체험에서 비롯된 해학 88편을 모은 시집이다. 제목인 사랑인 알았는데 부정맥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수십 만에 다시 찾아온 사랑의 감정인 알았지만 부정맥 때문이었다는 웃픈 이야기다. 우리의 두근거림이 부정맥이 아닌 사랑이길. 

 

에필로그. 

1. 고전 16:13~14.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믿음 굳게 서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자. 

2. 예수님이 땅에 사시다가 가신 2,000년이 지난 현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오늘의 부르심(calling) 무엇일까? 

    a.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신앙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b.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